신종자본증권 — 회계상 자본이라는 이름표, 계약서에 적힌 것은 이자입니다

가치지표 사전 · 가치투자 공부

어떤 회사가 갑자기 부채비율이 낮아졌다는 공시를 냅니다. 자본을 늘렸다는 뜻인데, 자세히 보면 유상증자가 아니라 “신종자본증권”이라는 낯선 이름의 증권을 발행했다고 적혀 있습니다. 만기 30년, 금리 연 6%. 이자를 낸다고 적혀 있는데 회계상으로는 자본이라고 부릅니다.

이 이름표가 이상하게 느껴진다면 정확하게 느낀 것입니다. 신종자본증권(영구채)은 법적 형식은 채권이지만 국제회계기준(IFRS)의 특정 조건을 만족하면 회계상 자본으로 분류되는 하이브리드 증권입니다. 이 글은 그 조건이 무엇이고, 왜 계약서상 실질은 여전히 갚아야 할 돈에 가까운지, 재무제표를 읽을 때 무엇을 따로 떼어봐야 하는지를 정리합니다.

🎯 핵심 요약
1. 신종자본증권은 만기·이자 지급에 대해 발행사가 계약상 재량권을 가질 때 IAS 32 기준상 자본으로 분류됩니다 — 부채인데 자본이 되는 것이 아니라, 애초에 부채의 조건(확정 상환 의무)을 갖추지 않은 것입니다.
2. 콜옵션(조기상환권)과 스텝업(금리 인상) 조항이 함께 붙으면, 회계상 자본이라도 시장은 사실상 5년 만기 채권처럼 취급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3. 이랜드리테일은 2025년 9월 1,000억원 규모 신종자본증권(만기 30년, 표면금리 6.00%, 2년 후 콜옵션)을 발행해 부채비율을 111.7%에서 107.8%로 낮췄습니다.
4. 신용평가사는 IFRS와 다른 잣대를 씁니다 — 콜옵션·스텝업이 있는 영구채는 회계상 100% 자본이어도 신용평가에서는 자본성의 일부만(예: 50%) 인정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신종자본증권이 회계상 자본 항목 뒤에 사슬로 이어진 상환 의무를 감추고 있는 모습을 표현한 플랫 벡터 일러스트

신종자본증권, 부채가 자본이 되는 조건 — IAS 32의 질문 하나

회계기준(IAS 32 금융상품 표시)이 자본과 부채를 가르는 기준은 하나입니다. 발행자가 현금이나 다른 금융자산을 인도해야 할 계약상 의무가 있는가. 의무가 있으면 부채, 없으면 자본입니다. 겉모습이 채권이냐 주식이냐는 부차적입니다.

신종자본증권은 전환사채(CB)·교환사채(EB)·신주인수권부사채(BW)와 마찬가지로 채권과 주식의 성격을 함께 가진 특수사채입니다. 다만 CB·EB·BW는 전환·교환권이 붙은 “부채”로 시작해 조건 충족 시 주식이 되는 구조인 반면, 신종자본증권은 처음부터 계약 조건만 맞으면 곧바로 “자본”으로 분류된다는 점이 다릅니다. 신종자본증권이 이 기준을 통과하려면 계약서에 다음이 담겨 있어야 합니다.

항목일반 회사채신종자본증권(자본 인정 조건)
원금 상환만기에 반드시 상환(의무)만기가 없거나 30년 이상 + 발행자 연장권
이자(배당) 지급정해진 시점에 반드시 지급(의무)발행자 재량으로 연기·미지급 가능
변제 순위일반 채권과 동순위후순위
상환 시점 결정권채권자(투자자)발행자(회사) — 콜옵션

핵심은 발행사가 안 갚아도 되는 재량이 계약서에 명시돼 있는가입니다. 이 재량이 있으면, 회사가 실제로 재량을 쓸 계획이 없더라도 회계상으로는 자본입니다. 국내에서도 2013년 두산인프라코어 영구채를 두고 이 원칙이 시험대에 올랐습니다. 콜옵션·금리 스텝업·주식교부청구권까지 붙어 있었는데도, IFRS 해석위원회는 발행자에게 현금 지급 의무가 없다는 이유로 자본 인정 결론을 내렸습니다.

콜옵션과 스텝업 — 재량이 있어도 사실상 못 미루는 이유

계약서상 재량이 있다고 해서 회사가 정말 그 재량을 마음껏 쓰는 것은 아닙니다. 여기서 콜옵션과 스텝업 조항이 등장합니다.

콜옵션은 발행 후 일정 시점(보통 2~5년 후)부터 회사가 원할 때 조기상환할 수 있는 권리입니다. 스텝업은 그 시점에 콜옵션을 행사하지 않으면 금리가 큰 폭으로 올라가는 조항입니다. 두 조항이 함께 있으면 회사는 사실상 이런 압박을 받습니다 — 안 갚아도 되지만, 안 갚으면 이자 부담이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으로 뛴다는 압박입니다.

그 결과 시장에서는 영구채를 명목상 만기가 없는 채권이 아니라 콜옵션 시점까지의 사실상 만기부 채권으로 인식하는 관행이 굳어졌습니다. 2022년 흥국생명이 이 관행을 깨고 외화 영구채의 콜옵션을 행사하지 않기로 하자, 시장은 이를 이례적인 사건으로 받아들여 채권시장 전체에 파장이 일었습니다. 계약상으로는 문제가 없는 선택이었는데도 그랬습니다. 관행이 계약을 사실상의 의무처럼 보이게 만든 경우입니다.

이랜드리테일 사례 — 부채비율은 개선됐지만

이랜드리테일은 2025년 9월 26일 사모 방식으로 1,000억원 규모 신종자본증권을 발행했습니다. 조건은 만기 30년, 표면금리 연 6.00%, 발행 2년 후부터 콜옵션 행사 가능, 미행사 시 금리 스텝업입니다. 이 발행 하나로 부채비율은 111.7%에서 107.8%로 낮아질 것으로 추산됐습니다.

재무제표만 보면 재무구조가 개선된 것으로 보입니다. 이랜드리테일 연결감사보고서(2024.12) 원문을 직접 대조한 결과, 발행 직전 회계연도(2024년) 기준 영업이익은 300.47억원, 이자비용(계속영업 기준)은 1,327.32억원, 부채비율은 111.7%(부채총계 3조 1,091.02억원 ÷ 자본총계 2조 7,845.33억원)로 원글 인용치와 정확히 일치했습니다. 영업이익으로 전체 이자비용의 4분의 1도 못 대는 상태에서, 연 6%짜리 자금 1,000억원이 새로 추가된 것입니다. 이 6%는 부채비율 계산에는 잡히지 않지만 현금흐름표에서는 고스란히 이자로 나갑니다.

여기서부터가 이 개념의 실전 적용입니다. 부채비율이라는 숫자 하나만 보면 재무구조 개선이라는 결론이 나오지만, 영업활동현금흐름이 실제 이자 지급액을 상회하는지를 별도로 확인하지 않으면 그 결론은 틀릴 수 있습니다. 신종자본증권은 재무상태표의 자본 항목은 늘리지만, 현금흐름표의 이자 유출은 줄이지 않습니다. EV/EBITDA 개념에서 다뤘듯 영업이익이라는 회계상 숫자와 실제 현금창출력은 다른 질문이며, 신종자본증권의 이자 부담은 그 간극이 가장 극단적으로 드러나는 사례 중 하나입니다. 자본 조달의 진짜 비용을 비교할 때는 ROIC처럼 조달한 자본 전체(신종자본증권 포함)가 실제로 얼마의 수익을 만들어내는지를 함께 봐야, 부채비율 개선이라는 회계상 신호에만 의존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회계기준과 신용평가사가 다르게 보는 이유

회계상 100% 자본으로 분류된 증권이라도, 신용평가사가 그것을 똑같이 100% 자본으로 취급하는 것은 아닙니다. 무디스·S&P 같은 신용평가사는 회계 분류보다 경제적 실질(콜옵션·스텝업이 있으면 사실상 상환 압박이 존재한다는 점)을 더 무겁게 봅니다. 그래서 콜옵션·스텝업이 있는 영구채를 신용등급 산정 과정에서는 자본성의 일부만(예: 절반) 인정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같은 증권을 두고 회계는 자본이라 말하고, 신용평가는 반은 부채라고 말하는 셈입니다. 두 관점이 다른 이유는 목적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회계기준은 계약서에 적힌 법적 의무의 존재 여부를 봅니다. 신용평가는 그 회사가 실제로 갚을 가능성이 얼마나 되는지를 봅니다. 투자자가 재무제표만 보고 부채비율 개선을 그대로 받아들이면, 이 두 번째 관점을 놓치게 됩니다.

세무당국은 또 다른 잣대를 씁니다

여기서 세 번째 관점이 등장합니다. 회계는 “자본”이라 말하고 신용평가는 “반은 부채”라고 말하는데, 국세청은 신종자본증권 이자를 손금(비용)으로 인정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국세청은 2014년 유권해석(법인세과-329) 원문에서, 은행이 발행한 신종자본증권 이자를 K-IFRS에 따라 이익잉여금 감소(배당)로 회계처리했더라도, 법인세 신고 시에는 신고조정을 통해 손금(비용)으로 산입할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회계장부에는 배당으로 적혀 있어도, 세금 계산에서는 이자 비용처럼 취급해 과세소득을 줄여준다는 뜻입니다. 이 해석을 둘러싸고도 “사채의 지급이자이니 손금”이라는 견해와 “자본에 대한 배당이니 손금 불가”라는 견해가 오래 대립해 왔고, 국세청은 전자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정리하면 하나의 증권을 세 개의 서로 다른 틀이 나란히 바라보는 셈입니다.

관점신종자본증권을 보는 방식
회계(IFRS)자본 — 계약상 지급 의무가 없으므로
세무(법인세법, 유권해석 사례 기준)손금 인정 가능 — 경제적 실질은 이자비용에 가까우므로
신용평가사부분 자본 인정(예: 50%) — 콜옵션·스텝업이 사실상 상환 압박을 만들므로

세 관점이 갈리는 이유는 목적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회계는 계약서의 법적 형식을, 세무는 소득 계산의 실질을, 신용평가는 상환 가능성의 실질을 각각 봅니다. 투자자가 재무제표의 “자본” 항목만 보고 판단을 멈추면, 세 번째·두 번째 관점이 이미 알고 있는 정보를 놓치게 됩니다. 다만 위 유권해석은 은행업 발행 사례를 대상으로 한 것으로, 이랜드리테일처럼 은행업이 아닌 발행사의 신종자본증권에 동일한 세무 처리가 그대로 적용되는지는 발행 조건과 개별 세무조정에 따라 달라질 수 있어 이 글에서 단정하지 않습니다.

짚고 넘어갈 질문

Q. 신종자본증권 발행은 유상증자와 무엇이 다른가요?

둘 다 회계상 자본을 늘립니다. 하지만 유상증자는 주주 지분을 늘려 기존 주주 지분율을 희석시키는 반면, 신종자본증권은 의결권이 없는 채권 형태라 지분율 희석이 없습니다. 대신 매년 확정 이자(배당 형태로 표시되기도 함)가 나가고, 그 금액은 당기순이익에서 차감되지 않고 자본 항목(이익잉여금)에서 직접 차감되는 경우가 많아 순이익 지표와 실제 주주 몫 사이에 괴리를 만들 수 있습니다.

Q. 콜옵션을 행사하지 않으면 회사에 어떤 불이익이 있나요?

계약상 불이익(디폴트)은 없습니다. 다만 스텝업으로 이자 부담이 커지고, 시장에서는 콜옵션 미행사를 재무 여력 부족의 신호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아 신용도·자금조달 여건에 간접적인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Q. 재무구조를 개선하려면 유상증자가 더 정직한 방법 아닌가요?

두 방법은 각각 다른 대가를 요구합니다. 유상증자는 신주를 발행해 기존 주주의 지분율을 즉시 희석시키지만, 그 대신 확정 이자 부담이 없습니다. 신종자본증권은 지분율을 희석시키지 않지만, 그 대신 매년 확정 이자(이 사례에서는 연 6%)를 계약 기간 내내 지급해야 합니다. “정직함”의 문제가 아니라 회사가 어느 비용을 더 감당할 수 있다고 판단했는지의 문제입니다. 영업이익이 이자비용에 크게 못 미치는 회사가 신종자본증권을 택했다면, 그 판단이 유상증자보다 나은 선택이었는지는 이자 지급 능력이 실제로 회복되는지를 봐야 확인할 수 있습니다.

Q. 신종자본증권이 많으면 무조건 위험한가요?

발행 목적과 상환 재원 계획에 따라 다릅니다. 이 글은 많다·적다를 판정하지 않습니다. 다만 발행 규모만 보고 재무구조 개선으로 단정하기보다, 영업활동현금흐름이 이자비용을 감당하는지, 콜옵션 시점에 상환할 재원 계획이 있는지를 별도로 확인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결론

제 판정은 이렇습니다. 신종자본증권의 회계상 자본 분류는 계약서에 적힌 발행사 재량의 결과일 뿐, 그 증권이 실제로 회사의 현금흐름 부담을 줄여준다는 뜻은 아닙니다. 부채비율 개선이라는 숫자 하나만으로 재무구조가 좋아졌다고 판단하는 것은, 콜옵션·스텝업 조항이 만드는 사실상의 상환 압박과 매년 나가는 확정 이자 부담을 빼놓고 보는 것입니다. 이랜드리테일 사례처럼 영업이익이 전체 이자비용에 크게 못 미치는 상태에서 새로 발행된 영구채는, 재무구조 개선이 아니라 상환 시점을 뒤로 미루는 시간벌기에 가깝다고 보는 편이 더 정확합니다.

틀렸다는 신호도 정해 두겠습니다. 콜옵션 행사 예정 시점에 발행사가 실제로 상환하고, 그 재원이 영업활동현금흐름 개선이나 자산매각 등 지속가능한 방식으로 조달됐다면 — 즉 신종자본증권이 정말로 시간을 벌어 체력을 회복하는 용도로 쓰였음이 확인되면, 신종자본증권은 대개 상환 압박으로 귀결된다는 이 글의 톤은 그 개별 사례에서는 약해집니다.

확인할 지표는 다음과 같습니다. ①발행사의 영업활동현금흐름이 신종자본증권 이자를 포함한 전체 이자비용을 얼마나 상회 또는 하회하는지 ②콜옵션 행사 예정일 전후로 신용등급·차입 조건에 변화가 있는지 ③콜옵션 미행사 시 실제 적용되는 스텝업 후 금리 수준입니다.


⚠️ 면책 안내: 이 글은 신종자본증권(영구채)의 회계·재무 개념을 설명하는 개념 정리 글이며, 특정 종목에
대한 매수·매도를 권유하는 내용이 아닙니다. 이랜드리테일은 개념을 설명하기 위한 사례로 인용됐을 뿐,
해당 종목에 대한 별도 의견을 담고 있지 않습니다. 투자 판단과 책임은 투자자 본인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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